국제시장을 채우는 사람국제시장국제시장을 채우는 사람

국제시장을 일구다,
국제시장을 잇다

코리아가방 권영일 1대 사장
A동 1층
코리아가방 권영일 1대 사장

코리아가방 권영일 사장이 국제시장에 온 지 52년째.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정착한 이곳에서 반세기를 보냈다. 그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곳에서 지금의 아들과 함께 삶의 이어가고 있다.

삶의 터 국제시장과 함께한 반세기

1945년 광복 이후 이곳 광복동에서 일본인들이 남긴 물건이나 동포들이 가져온 물건들이 거래되면서 국제시장의 역사가 시작됐다. 번듯한 점포도 없이 공터에 자리를 깔고 장사를 하는 사람과 물건을 사는 사람이 뒤섞여 시끌벅적해서 처음엔 도떼기시장이라 불렀다. 그러다 1948년에 건물을 세운 것이 자유시장, 1950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까지 취급하게 되면서 국제시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권영일 사장은 원래 이북사람이다. 부모님과 함께 피난을 내려와 서울에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어려운 형편에 입이라도 덜자 싶어 군에 입대했다. 제대하고 나서 보니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 부산 국제시장에서 사람을 많이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내려온 것이 1967년이다.
“그때는 삼시 세끼 밥만 먹여주면 일을 했어요. 퇴근 시간이라는 것도 없었고, 주말도 없었어요. 그래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많았죠. 다들 그렇게 열심히 나니 살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 그런 시절을 살았어요. 그게 벌써 52년이 됐으니 국제시장은 나 같은 서민이 살아가는 곳이죠.”
24살의 청년이 할아버지가 되기까지 반세기. 이곳 국제시장에는 권영일 사장의 땀과 노력 그리고 청춘이 담겨 있다.

아들과 함께 삶의 터전을 이어가다

권영일 사장에게 가방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어려운 시절 도시로 나와 돈을 벌고, 명절이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손에는 가방이 들려있었다. 권영일 사장은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가득 담을 수 있는 큰 가방을 사기 위해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의 마음을 대신 손님들의 가방에 실어 보냈다.
국제시장 코리아가방은 유명세를 타고 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에 권영일 사장의 아들이 소개되면서부터이다. 아들 권창오 2대 사장은 잠겨 버린 캐리어를 열어주는 ‘열쇠의 달인’을 소개됐다.
“가방을 잠갔다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가져오는 가방을 하나씩 열어주다 보니 입소문이 나서 방송국에서도 찾아오고 촬영도 했죠. 그때부터는 아들을 찾아오는 사람이 더 많아. 허허”
가방을 새로 사 가야 하는데 잠금만 풀어간다고, 아들의 재주가 영 반갑지 않다고 하면서도 아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싫지 않다. 당신의 청춘이 새겨진 일터를 아들이 이어받아 고맙다.
아들이 가게를 운영하고부터 코리아가방은 젊어지고 있다. 늘어나는 여행객들을 위해 캐리어를 늘리고, 종류도 다양하게 들여놨다. 휴가나 관광으로 잠시 부산을 찾은 사람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가방을 고르기만 하면 택배로 집까지 배송해 준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시장은 변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 빨리 변해가는데 국제시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권영일 사장은 그것이 반가우면서도 아쉽다고 한다. 자신에게는 익숙하지만, 이제는 변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삶을 일굴 수 있었던 이곳, 후대가 살아가야 할 이곳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