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을 채우는 사람국제시장국제시장을 채우는 사람

칼맛 불어넣는 솜씨를 보았느냐

칼의 명가 김덕길 사장
A동 1층
칼의 명가 김덕길 사장

19살 소년은 칼을 잡았다. 숫돌에 칼을 갈고 또 갈고, 가위를 갈고 또 갈면서 40여 년을 국제시장에서 보냈다. 주방 기물 가게 점원이었던 소년은 칼 전문점 사장이 되었고, 그의 주변은 어느새 단골손님과 시장 상인들로 북적였다. 칼의 명가 김덕길 사장은 그렇게 시장에 녹아들었다.

칼맛을 알아버렸다

칼날은 무뎌지는 법이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의 손끝은 무뎌지는 법이 없다. 오히려 그의 솜씨는 세월 따라 내공이 쌓일 대로 쌓여 평범한 칼에도 칼맛을 불어넣을 정도가 되었다.
“칼맛? 칼 좀 쓴다는 사람들은 다 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시원시원하게 칼이 들어야 요리할 맛이 나거든. 그게 칼맛이야.”
김덕길 사장 덕에 칼맛 좀 본 사람들은 늘 그에게 칼을 맡긴다. 김 사장이 가게 자리를 옮기자 수소문해서 그를 찾아내 칼을 맡긴 고객도 있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뒤로 때마다 택배로 칼을 부쳐오는 고객도 있다.
“일부러 오기 힘드니까 택배로 칼을 보내오는데, 그럼 내가 잘 갈아서 다시 택배로 보내주지. 인근 음식점에서는 아예 칼을 맡겨놓고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분들도 있고. 그럴 만도 한 게 칼은 정성 들인 만큼 보답하거든.”
그의 말대로다. 잘 연마된 절삭력이 좋은 칼은 사용자가 힘들이지 않고도 재료를 손질할 수 있게 돕는다. 음식점, 정육점처럼 칼을 많이 쓰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칼의 보답’을 몸소 실감하기도 한다고.
“잘 들지 않은 칼로 작업하다 어깨, 손목, 팔이 아파서 고생하는 사람도 많이 봤어. 아주 좋은 칼이 아니더라도 잘 연마해서 쓰면 오랫동안 편리하게 잘 쓸 수 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칼 연마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만 알고.”
천 원짜리 칼부터 몇백만 원짜리 칼까지. 수백 자루의 칼에 둘러싸여 칼을 갈고 있는 김덕길 사장. 그가 말하는 칼의 세계는 대체 얼마나 넓고 심오한 것일까.

명가다운 가게를 만들고 싶어

주방 기물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그가 자신의 가게를 마련한 지는 어언 25년. 칼의 명가를 세운 지는 6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주방 기물을 팔다가 칼의 소중함을 느끼고 칼 전문점으로 특화한 것이다.
“칼의 명가라는 간판을 달아놓은 건 명가다운 가게를 만들고 싶어서야. 일단 제품을 사 갔을 때 소비자들이 만족해야 해. 칼을 팔았으면 적어도 ‘그 집 칼 잘 들더라’, ‘거기서 칼 사길 잘했다’ 소리는 들어야 하니까.”
그래서 김 사장은 고객이 칼을 고르면 그 자리에서 포장을 뜯어 면잡이를 하고 날을 세워준다. 공장에서는 기본 날만 세워서 가져오기 때문에 겉보기에 예리해 보여도 생각만큼 잘 들지 않기 때문이란다.
“습식 숫돌을 써서 연마해야지, 기계나 그라인더를 잘못 사용하면 열처리된 부분이 다 죽어버려. 칼날과 면에 무리가 가지 않게 정성 들여 갈아야 오래오래 쓰지.”
작업하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겠다는 마음, 전문집은 뭐라도 달라야 한다는 신념, 장인 정신으로 중무장한 칼 전문가지만, 그는 <독 짓는 늙은이>에 나오는 그런 장인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주변에는 유독 사람이 많고 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 만나는 게 너무 좋아서 아침에 눈 뜨면 빨리 가게에 나오고 싶어. 단골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주변 이웃들과 커피도 마시고, 후배들과 봉사활동도 하고, 시장 행사에도 참여하면 하루하루가 살맛 나거든. 친구도 이웃도 손님도 다 있는 곳, 국제시장, 우리 시장은 이제 내 고향이야.”
김 사장은 세월이 얼마나 흐르든 건강하기만 하다면 국제시장에 나와 앉아 칼을 연마할 생각이다. 절대 손에서 칼을 놓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미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두터운 두 손, 날카로운 칼날에 입은 손가락 상처마저도 ‘내게는 훈장 같은 것’이라며 허허 웃어넘기는 남자. 19살 소년이었던 김덕길은 이렇게 칼의 명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