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을 채우는 사람국제시장국제시장을 채우는 사람

한결같이 국제시장 삶의 터전만
지켜온 터줏대감

영광커텐장식 여병률 사장
4공구 B101,102
영광커텐장식 여병률 사장

“전쟁의 여파가 끝나지 않은 1950년대. 먹고 살려고 국제시장으로 온 한 청년은 손발이 다 닿도록 열심히 일했다. 이것을 어여삐 여긴 사장님은 가게를 청년에게 물려준다. 그렇게 40여 년, 청년은 국제시장의 터줏대감이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생을 국제시장에 뿌리내리고 삶을 가꿔온 영광커텐장식 여병률 사장의 이야기이다.

국제시장과 함께한 질곡의 삶

1976년 영광커텐장식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병률 대표. 그에게 영광커텐장식은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다. 당시 마땅한 배움도, 기술도 없었던 21살 청년은 국제시장이라는 명성만 듣고 전라남도 장흥에서 이곳으로 왔다. 그때 그를 받아 준 곳이 평생의 직장이 되었다. 평안도에서 피란을 온 고 임성국 씨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어린 직원을 유달리 아꼈다. 청년은 사장이 보는 곳에서든, 보지 않는 때도 손이 부르트고 발에 물집이 잡히리 없이 10여 년을 한결같이 열심히 일했다. 어느 날엔가 사장은 그를 불러 가게를 운영해보라 했고, 아예 점포를 물려주었다. 그 후로 30여 년 같은 자리에서 영광커텐장식을 운영하다 점포를 키워 이전했다. 그렇게 청년이 할아버지가 되는 시간 동안 국제시장과 함께했다. 여병률 사장에게 국제시장은 그야말로 삶의 텃밭이다. 그리고 그는 국제시장의 흥망성쇠를 다 들여다본 산증인이다.

시인 최춘남은 <삶의 텃밭>이라는 시에서 여병률 사장을 노래했다.

여병률 사장님은/ 국제시장에서 삶과 함께 청춘을 다 받쳤다/ 한결같이 국제시장 삶의 터전만 지켜온 터줏대감/ 처절한 피난살이 텃밭에서 이웃과 함께/ 동분서주하며 손발이 다 닿도록 살아온 사람/ 내 나이 이제야/ 맑은 하늘 바라보니/ 국제시장 영화처럼/ 그때 그 시절이/ 흘러버린 수십 년/ 나를 찾아준 과거와/ 현재의 고마운 분들이/ 내 가게 앞/ 꽃분이네 가게보고/ 주인공과 관객 되어 돌아가고 있다

평생 한길, 돈보다 큰 영광

영광커텐장식은 국제시장의 역사와 함께한다. 고 임성국 씨가 문을 열었을 때부터 꼽으면 65년 동안 같은 이름으로 국제시장을 지키고 있는 영광커텐장식.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대형 쇼핑몰로 이전하라는 이도, 힘든 일 관두고 돈이 되는 것을 팔라며 유혹하는 이도 있었지만, 여병률 사장은 흔들리지 않고 한길을 걷고 있다. 긴 세월 영광커텐장식만 찾는 단골손님이 있고, 그를 이끌어준 선대 사장의 정신을 후대에도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국제시장의 터줏대감답게 이곳의 상인들과 함께 사회공헌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수익금 일부를 모아 불우이웃을 돕고, 주변 환경 정화 활동, 봉사활동도 상인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 인터넷 시장에 빌려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국제시장에는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이 있고, 정이 있고, 흥이 있다고 말하는 여병률 사장. 이것을 어찌 값으로 환산할 수 있으랴.

국제시장엘 올 일이 있는가? 국제시장이 궁금한가? 영광커텐장식에 들러 여병률 사장을 만나보라. 넉넉한 인심만큼 소담한 미소로 당신을 맞아 줄 것이다.